소록도에서의 삶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든이를 편견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봉사를 ...
한센병은 teenage disease 즉 십대병이라고도 했습니다.
한센병 초기 발병이, 많은 경우 어린 나이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아야 할 나이에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기에 누구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실했고 두 분은 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또한 한센인들끼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소록도 밖으로 강제 퇴원을 당했습니다. 강제 퇴원 시 살림살이와 정착금이 필요했는데,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어 한센인들이 가정을 잘 꾸려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습니다. 이 일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으로 떠나신 날까지 40여 년간 이루어졌습니다. 두 분은 진정 한센인들에게 어머니가 되어 주셨습니다.
M관사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하여 주교님, 신부님, 수사, 수녀님, 목사님과 스님까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손님들의 방문지였습니다.
두 분은 누구에게나 최대한 친절하고 훌륭히 접대하려 노력하였습니다. 병사지대의 환우들도
집으로 직접 초대하여 자주 식사하였고 성당 어르신들의 생일날에는 오븐에 직접 빵을 구워
왔습니다. 약 200여명을 했으니 매일 빵을 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직원이나 간호들의 축일이면 케익을 직접 배달 해주고 함께 기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본인들은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부러진 빗자루에는 늘 테이프가 감겨 있었고,
옷이 해어지면 죽은 이들의 옷을 수선하여 입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마리안느 방안에 있는
철재 금고는 항상 돈이 나오는 마술 상자였고, 응접실의 소파는 모든 이들을 편견 없이 받아주는
사랑의 방석이었습니다.
40여년 지속된 두 분의 하루 일과입니다.
두 분은 새벽 5시쯤 병원 아동실(나중엔 M치료실)에 도착하여 우유를 만들 물을 끓였습니다. 따뜻한 우유를 만들어 새벽마다 병실 어르신들에게 직접 가져다 드렸습니다. 기도와 2번지 성당의 미사 참석 후 아동실인 M치료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부락에서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드리며 람프렌과 주치약 투약을 했습니다. 또한 어르신들과 간호 직원이 요구한 물품을 드리고 어르신들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치료하면서도 개개인을 잘 살펴 그분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미리 챙겨주었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듯 보이면 종교 구분 없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치유될 때까지 병실 간호나 직원 손 가지 않게 한 끼 먹을 분량을 냄비에 따뜻하게 가져와 직접 주거나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았고 철저히 숨었습니다.
2016년 4월26일 첫 공식 기자 간담회에서, “진짜 특별한 것 하나도 안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들 돕고, 환자들 좋아하고, 우리 43년 동안 진짜 소록도에서 좋은 시간 보냈어요. 62년에 여기 왔을 때 우리나라도 가난했고, 우리나라도 간호원들 부족했고. 그러나 부름 따라서 가는 거니까 (굳이) 알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죠.” 라고 말하며, 자신이 한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인데, 이상하게 기사가 나가면 특별하게 보이고 너무 지나치게 평가되는 것 같아서 부담이었다고 말했습니다.